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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티스트

2020.04.17

 

키스 해링과 장 미셸 바스키아

 



 

 

어릴 적 지나가다가 우연히 벽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를 본 적이 있다. 

 

 

형체를 알 수 없던 그 낙서는 어린 내 눈에 반항적이면서도 예뻐 보였으며, 무서우면서도 멋있었다. 그 후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유럽 여행에서 다시금 거리의 낙서를 만났다. 이미 한참이 지난 그때에는 ‘낙서’보다는 '그래피티'라는 명칭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후 였다. 원래 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리 곳곳에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그래피티를 자신의 것으로 덮은 작품들부터, 그린 지 한참이 지나 균열이 생긴 것들까지 모두 제각각 이었다. 흥미로웠던 건 단순한 낙서를 넘어서, 담고 있는 주제들이 모두 달랐던 것이었다. 어떤 그림이나 문구는 현실을 비판하거나 풍자했고, 또 다른 것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가지 동일 했던 건, 자칫 반항적이나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음에도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에게 사진 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래피티는 시대가 지나면서 어느덧 친근하기까지 한 '거리예술'로 인정받고 있었다. 

 

 

@John lennon wall prague, prague-info.info

 

+  [ 그래피티( graffiti ) :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 ]


 

그래피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미국까지 가게 된다. 

 

그래피티 관련 키워드로 어렵지 않게 '범죄'라는 단어를 볼 수 있는데, 1960~70년대 미국 갱스터들의 문화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미국 갱스터는 영역표시의 의미로 특유의 무언가를 벽에 남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대중들이 그래피티를 예술이 아닌 범죄 조장(promote crime)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1900년대 후반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비주류 문화가 성행하던 시기였고, 그래피티 역시 아티스트들에게 유행처럼 퍼지게 되었다.

 

 

1996년 뉴욕에서는 이러한 그래피티의 유행을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실제 1999년에는 지하철의 그래피티를 지우자 강력 범죄가 75%가 감소했다는 발표도 있었는데, 이러한 결과는 그래피티를 긍정이 아닌 부정적이고 비주류의 예술 문화로 보기에 충분했다. 

 

 

그래피티의 탄압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오히려 '그래피티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여러 예술가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는데, 그들 중에서는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도 있다. 

 

 

@Watch Keith Haring get arrested on national TV, 1982

 

 

키스 해링은 1981년 뉴욕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시작했다. 당시 젊은 미술가였던 그는 거리와 지하철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보고 영감을 받게 된다. 이에 흰색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당시 그래피티를 막으려던 정책에 따라 경찰에 쫓겨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키스 해링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작품 아이디어를 선보였고, 실제로 공공기물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한다. 

 

 

@Keith Haring, Sotheby’s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인지도를 쌓고있던 키스 해링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한 아트 딜러를 통해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회는 큰 성공을 했고 그를 '뉴욕 대표 팝 아티스트'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래피티 활동으로 체포가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그래피티가 그의 작품 세계의 형성과 더불어 유명세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키스해링의 작품은 캐릭터의 활기찬 동작과, 선명한 색채굵은 윤곽선이 특징이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캐릭터 이상의 담긴 의미들이 다른 현대미술과는 달랐다. 그는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작품을 통해 인종차별 반대, 동성애자를 위한 인권운동과 반핵운동 등을 담아낸다. 이미 그래피티로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표현하며, 소수가 아닌 다수와 소통을 했던 그는 유명한 팝 아티스트가 된 후에도 문제의식을 작품 속에 꾸준히 담으며 한 시대를 담아내는 현대미술가의 길을 걸었다.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다른 예술가들의 삶을 연구하고, 세상을 연구하면서 배웠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키스 해링 저널

 

 

 

 

 

 

@My Modern Met Store

 

 

 

 

 

 

이후 키스 해링은 다수의 공공 벽화 주문을 맡았고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폭발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를 유명 미술관뿐만 아니라 여러 제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양말부터 티셔츠, 신발과 같은 제품 콜라보는 그의 이름을 몰라도 ‘한 번쯤 봤을 만한’ 캐릭터로 각인되면서 미술에 관심 없던 비전공자들에게까지 사랑을 받게 된다.

 

 

 

 

 

그의 또 다른 업적으로는 작품을 통해 예술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한 것이다. 

 

 

 

 

 

당시 예술은 상위 특정 층이 향유하는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키스 해링은 특정 소수가 아닌, 다수의 대중들을 위해 인종과 관계없는 예술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그의 작품을 연령과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만들었다. 문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흐름을 직접 주도한 그의 영향은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의 20세기 미술은 당시 최고의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과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와 함께했다. 특히 바스키아는 키스 해링과 함께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주도한 인물로 손꼽힌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장 미셸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처음 만난 앤디 워홀에게 자신이 그린 엽서를 10달러에 팔려고 한 일화가 있다. 

그는 시큰둥한 앤디 워홀에게 ‘자신은 더 유명해질 것’이라며 또 다른 그림을 선보였고,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앤디 워홀에 의해 이후 영감을 주고 받으며 함께 작업을 했다. 그리고 실제 바스키아는 오늘날 경매장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그가 경매장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더 높은 금액에 낙찰이 되기도 하니, 그의 다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단순한 ‘낙서’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았던 1960년대를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쉽다.

 

 

 

오늘날까지 ‘인권 문제’란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는 사회 문제이다. ‘문제’라고 인식되면서 과거에 비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아도, 코로나 19와 같은 사회적인 위기가 발생되면 너무나도 당연하듯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바스키아가 태어난 1960년대는 어땠을까. 지금보다 인간의 권리가 피부색으로 차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만연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스키아는 불우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여러 외국어를 습득하며 미술관을 다녔다니, 오히려 부유한 편에 속했을지도 모른다.

 

 

 

 

좌) Pablo Picasso, Guernica/ 우) graffiti, SAMO


 

 

그러나 자신의 상황에 관계없이 ‘피부색의 차별’을 실감했던 바스키아는, 이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음에도 작품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런 그의 출발점은 그래피티 였다. 알 디아지(Al Diaz)와 함께 사회 비판의 의미를 담은 '세이모(SAMO, Same Old Shit의 약자)'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그래피티에 발을 들인다. 동시에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 앞에서 엽서와 티셔츠 위에 그린 그림을 팔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가 활동했던 세이모는 오래가지 못했다. 함께 활동한 디아스와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바스키아는 스타 예술가를 꿈꿨고 디아스는 익명의 화가를 원했다. 결국 이들의 활동은 '세이모는 죽었다(SAMO IS DEAD)'라는 마지막 그래피티로 종료된다.

 

 

 

 

 

 

좌) 작품 앞에 서 있는 바스키아/ 우) 앤디워홀과 바스키아

 

 

 

이후 바스키아는 그가 꿈꾸던 스타의 길로 진입한다. 첫 그룹 전시회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후 휘트니 비엔날레에 최연소 화가로 참여했고, 미국의 대표 화가인 앤디 워홀과 공동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 것이다. 특히 바스키아의 인기와 예술의 중심에서 앤디 워홀은 뺄 수 없는 인물이다. 당시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었던 앤디 워홀의 영향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만의 마케팅은 바스키아를 인기스타로 만들었다. 바스키아의 독창적인 화풍은 앤디 워홀에 의해 사람들에게 선보여졌고, 흑인 예술가가 적었던 시대의 호기심까지 받으며 더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바스키아가 인기스타를 꿈꾸던 마돈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정도였다니, 그 인기가 짐작된다. 그러나 앤디 워홀로 소개된 바스키아는 다시 앤디 워홀 덕분에 쓴 맛을 본다. 공동으로 참여한 전시의 실패와 그들이 동성 애자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이를 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앤디 워홀은 갑작스러운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바스키아는 1년 후에 약물 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

 

 

 

 

 

 

@Jean-Michel Basquiat, The Guardian


 

 

 

장 미셸 바스키아는 2000년대의 지금, 여러 미술관과 경매시장에 종종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낙서 미술이 아닌, 키스 해링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답게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인종차별인 사회문제이다. 그는 인종차별을 다루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흑인 영웅으로 작품의 이야기를 연결시킨다. 단순하게 '인종차별 반대'가 아닌, '흑인에도 이러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소개한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서는 흑인 영웅들에게 왕관을 씌운 캐릭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왕관은 이제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이렇듯 키스 해링과 장 미셸 바스키아는 그래피티를 통해 스타 작가로 발돋움했지만, 그들의 유명세를 활용해서 사회 문제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들이 예술가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운동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비주류 문화였던 그래피티를 '예술'로 불리게 했다. 

 

 

 

 

@심찬양 작가, LG 유플러스

 

 

 

 

그들 덕분에 21세기에는 국적과 국경에 상관없이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제 2의 키스해링과 바스키아를 꿈꾸는 이들 덕분에 우리 역시 어렵지 않게 그래피티 아트라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지난해 모 휴대폰 광고에 등장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심찬양 작가도 그 중 한 명이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그려서 대중에게 각인된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래피티의 매력을 우연성과 평등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피티를  '세상의 그 어떤 권력자도 소유할 수 없고, 직접 거리로 나와서 작품을 봐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굽히지 않는 매력이 있다'라고 소개했는데, 그 구절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오늘날의 우리는 키스 해링이 경찰에 쫓기고, 바스키아가 스타를 꿈꾸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구축한 덕분에 폭넓은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 2의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를 넘어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는 작가들을 만나는 기쁨까지 누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들의 노력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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