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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조선시대에 그려진 가장 에로틱한 그림

2020.04.28

 

 

 

 

 

인간의 욕망을 그린 화가, 신윤복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연일 화제이다. 불륜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풀어낸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장면들로 연령 시청에 제한을 두었다. 그럼에도 방영된 직후에는 인터넷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반응이 매우 뜨겁다.

 

자극적인 '인간의 욕망'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노래와 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여러 미술 작품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했다. 예술가들은 그림을 통해 '욕망'을 표현했다. 욕망이 담긴 자신의 내면과 더불어 타인의 욕망을 화폭에 담았다. 욕망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고, 또 감추려 하는 매력적인 주제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욕망이 담긴 그림, 이라고 했을 때 어떤 작품들이 떠오를까. 

 

 

대부분은 주로 서양화를 떠올린다. 관능적인 여성의 몸과 붉어진 얼굴이 담긴 누드화, 남성과 여성의 자극적인 모습이 담긴 작품 등이다. 

 

 

 

 

 

 

좌) 고야 <옷을 벗은 마하(The nude maja)>, 우) 에곤 실레 

 

 

 

 

 

왼쪽의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 옷을 벗은 마하 >이다. 스페인의 대표 화가 고야는 당시 공식적으로 금지가 되어있던 누드화를 그리고 종교 재판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누드화로, 당시 그려진 다른 작가들의 누드화와는 다르다. 그 당시에는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정면이 아닌 뒤돌아 누운 포즈를 그려야 했다. 이는 보수적인 가톨릭 사회의 영향이었는데, 고야는 이를 깨고 정면을 바라보는 노골적인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그린 것이다. 특히 여성의 몸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손을 머리 뒤로 올림으로써 가리는 게 아닌 '보여주는' 대담함을 담았다. 덧붙여 여성의 시선도 부끄럽게 떨군 것이 아닌 도발적으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여성의 눌린 욕망을 표출하는 듯한 이 작품은 보는 이에게도 자극적인 작품이다.

 

 

 

오른쪽의 작품을 그린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는 대부분의 작품에 '욕망'을 표현했다. 그가 생각하는 회화는 진실을 보여주는 매개체였다. 그는 그 진실을 성과 죽음에서 찾았다.  을 통해서도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의 남녀는 뒤엉킨 동작과 상기된 표정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과장된 근육과 색체는 인간의 육체를 관능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여성과 소녀, 그리고 남성의 누드화로 자신의 억눌린 욕망을 표출했던 실레는, 훗날 논란의 대상이 되며 미성년자 유인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옥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가 미술책에서 배운 작품 속의 '욕망'은 대게 자극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여기, 조선시대 그려진 작품들 중 '가장 에로틱'하다고 알려진 작품이 있다. 

 

 

 

 

인간의 욕망을 그린 화가,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 봄날이여 영원 하라)>이다.

 

 

 

신윤복, <사시장춘(四時長春, 봄날이여 영원 하라)>, 국립중앙박물관

 

 

 

 

<사시장춘>은 한 소녀가 술상을 들고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만약 박물관에서 어린아이가 이 작품을 빤히 바라본다면 당황해서 그 아이의 눈을 가리는 부모가 있을까. 그만큼 이전의 그림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여성의 노출도, 매혹적인 표정도, 적나라한 동작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이 알고 보면 '조선시대의 가장 에로틱한 그림'이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유일한 등장인물인 소녀이다. 

 

소녀가 바라보는 쪽의 신발크기와 소녀의 발을 비교해보면 아직 성장 중인 어린 소녀로 추측된다. 술상을 든 모습과 그녀의 옷으로 봤을 땐 양반보다는 종의 모습 같다. 그런데 소녀가 술상을 들고 방의 문을 바라보고만 있다. 어리고 낮은 계급이라면 당연히 아무 말 없이 술상을 들여야 할 텐데, 어쩐지 엉덩이를 뒤로 빼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듯이 쭈뼛거린다. 무엇이 이 어린 소녀를 고민하게 만들었을까.

 

 

 

소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신발 두 켤레가 있다.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신발과, 여인의 붉은 꽃신이 있다. 놓인 신발의 모습이 정갈하지 못하다. 급하게 벗고 방으로 들어간 것 같다. 가만 보니 신발의 위치가 이상하다. 바닥이 아닌 쪽마루에 올려져 있다. 본래 우리나라 문화로 봤을 때 신발은 바닥에서 벗고 올라가야 한다. 아마 바닥에 벗을 시간도 없을 만큼 급했거나, 혹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신고 떠날 수 있도록 올려둔 느낌이다. 방안에 있는 인물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매우 급하고 부산스럽게 들어간 두 남녀의 관계가 떳떳한 느낌은 아니다.

 

 

 

 

 

 

 

 

 

 

 

작품 속 배경은 개방된 공간이 아닌 숲과 계곡 속에 감춰진 공간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두운 밤이 아닌, 달이 없는 것으로 봐서 환한 낮이다. 작품 속에서는 소녀와 신발 외에도 거칠고 뾰족뾰족한 나무와 활짝 핀 꽃시냇물이 흐르는 계곡도 보인다. 

 

 

가장 왼쪽의 큰 나무는 두 가지 의미로 추측해볼 수 있다. 먼저, 방을 은밀하게 가리고 있는 모습에서 '이 방 안에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음'을 전해주는 매개체이다. 동시에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이 나무를 남성의 신체 부위로 본다면, 오른쪽 계곡은 여성의 부위로 연관 지을 수 있다. 우거진 풀 아래에서 내리는 시냇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흐리게 그려졌지만 가장 노골적인 그림인 것이다.

 

 

나무와 계곡의 사이에는 활짝 핀 백매화가 있다. 매화는 봄에 피는 꽃으로 당시 화가들이 선호했던 꽃이다. 작품 속에서 이 꽃은 남녀 사이에서 피어나는 정감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환한 낮에 뭐가 그리 급해서 은밀한 곳에 신발도 제대로 못 벗고 방으로 들어갔을까.

 

 

소녀는 왜 흐트러진 신발이 놓여있는 문을 바라보며 주저하는 중이고, 나무와 계곡 사이에는 사랑을 암시하는 듯한 활짝 핀 꽃이 있을까. 

 

 

 

 

 

오늘날 매화의 꽃말을 '기품, 결백, 고결한 마음'으로 풀이하는데, 작품 속의 기품 없는 남녀의 모습과 연관 지어보면 다소 재미있는 현대식 풀이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이해가 어려울 이들을 위해 신윤복은 '사시장춘'이라는 이름을 문 옆에 걸어놨다. 그림의 제목인 <사시장춘>을 그대로 풀이하면, '봄날이여 영원 하라'는 뜻으로 기나긴 봄날의 즐거움을 표현한 문구이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옛날 사람들에게 '춘(春)'이란 남녀의 정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했던 단어이다. '봄 춘(春)'을 단어 그대로 순수한 의미 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선조들은 봄에 씨를 뿌리고 농사짓는 것을 성행위와 연관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봄의 어원을 여성의 성기로 봤다 하니, 사시장춘이라는 제목과 그림을 바라본다면 요즘 방영하는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은 에로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신한평, <자모 육아(慈母育兒)>

 

 

 

이 작품의 상단 좌측에는 신윤복의 호인 '혜원(蕙園)'이 찍혀있다. 

 

혜원은 혜초 정원을 줄인 말로,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빗대었다. 그가 바로 조선 최초의 에로티스트로 불리는 신윤복이다.

 

 

 

"신윤복(申潤福).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고령인(高靈人). 첨사(僉使) 신한평(申漢枰)의 아들, 화원(畵員).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중에서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알려진 신윤복은, 영조와 정조의 어진 제작에 참여한 화원 신한평의 아들이다. 집안의 대를 이어서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모습은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신한평의 <자모 육아> 속 등장인물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으나, 그의 가족관계를 통해 부인과 딸, 그리고 두 아들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종의 가족사진과도 같은 이 작품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어린 소녀와 두 아들, 그리고 어머니이다. 실제 신한평은 신윤복을 포함해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면 왼쪽에 앉은 딸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앞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를 땋고 한쪽으로 늘어뜨린 소녀의 옆에는, 수유를 하는 어머니와 아들도 보인다.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은 바랜 그림 속에서도 느껴지는데, 혹여나 아이가 불편할까 봐 양 팔로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빼앗겨서 심술이 난듯한 소년이 있다. 눈물을 훔치는 이 소년이 신윤복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이 담긴 의미는, 신윤복의 유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에 있다. 실제로 신윤복은 당시 시대의 상황을 화폭에 가감 없이 담았다.

 

 

 

이렇듯 신윤복은 그의 오늘날 인지도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는 오세창이 남긴 글처럼 풍속화를 잘 그렸으며, 주로 남녀 간의 연애기녀와 기방의 세계양반층의 풍류 남녀의 밀애여성의 본능을 그렸다. 

 

 

 

 

 

신윤복, <월야밀회(月夜密會)>, 간송미술관

 

 

 

신윤복의 <월야밀회>는 달이 비추는 야밤에 두 남녀가 정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왼쪽의 환하게 뜬 보름달을 보니, 어두운 야밤에 만난 것 같다. 그들이 서있는 공간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보인다. 화면 속의 두 남녀도 <사시장춘>처럼 어딘가 매우 급하면서도 애틋한 모습이다. 복식으로 봤을 때 남성은 무관, 여성은 기생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에는 그들의 욕망 담긴 애틋함을 바라보는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눈길은 시샘이나 원망이 아닌, 동정 어린 따뜻한 모습이다. 밀회를 도와준 인물이자, 망을 보는 인물로 추정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신윤복, <기방무사(妓房無事)>, 간송미술관

 

 

 

 

또 다른 작품인 <기방무사>는 직역하면 '기방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 도리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추측하게 되는 이 작품은 세 사람의 묘한 긴장감이 담겨있다. 왼쪽에는 외출해서 돌아온 기생으로 보이고, 오른쪽에는 어딘가 어색한 동작의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뒤쪽으로는 쓰러진 가야금이 보인다.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작품 속의 풍경을 둘러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달이 없는 걸 보면 환한 낮으로 보이는데, 햇빛을 가리는 발이 내려져 있는 걸로 봐서 한여름 같다. 그런데 작품 속의 남자가 이불을 덮고 있다. 아마 전작의 작품들을 보고 추정한다면 해석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옷을 입을 시간도 없어서 급하게 이불로 몸을 가린 남자를 통해 두 남녀가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왜 그녀의 몸종으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의 위에서 당황한 모습일지 이해된다.

 

 

 

 

이렇게 신윤복은 유교사상으로 엄격했던 당시, 과감하고 진솔하게 200여 년 전의 조선과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화폭에 담아냈다. 양반사회의 보수적인 문화를 생각했을 때 그의 작품은 굉장히 대담하면서도 놀랍다.

 

 

 

신윤복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국보인 < 미인도 >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미인도>는 조선시대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양반집 규수가 아닌, 당시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기생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를 추측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야기가 위인전처럼 전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이러한 그림을 그린 신윤복을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신윤복에게 ‘욕망’이란 단순한 소재가 아니었다. 그는 성을 통한 인간의 욕망으로 시대를 표현했다. 양반의 이중성과, 계급을 떠난 남녀의 욕망은 그의 그림 곳곳에 담겨있다. 그림 안쪽에 감춰진 이야기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에 맡긴다.

 

 

 

 

이토록 그 시대의 현실을 에로틱하면서도 

세련되고 신비롭게 표현한 화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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