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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부부의 세계'보다 더한 현실이 있다고?

2020.05.12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부부이야기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로맨틱한 대사를 남자 주인공이 외쳤지만,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그는 극 중에서 불륜을 저질렀는데, 당황스럽게도 그의 아내에게 이 대사를 외쳤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웠음에도 당당하게 사랑이었다고 외친 남자 주인공에게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중 한 에피소드이다. 매회 예상치 못한 전개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이 드라마는 부부의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를 풀고 있다. 과연 '부부'란 무엇일까. 그들이 만든 세계는 어떤 것일까.

 

 

 

 

 

여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부부의 세계도 있다.

 

 

 

 

 

Q.    다음 중 배우자로 한 명을 반드시 골라야 한다면 어느것을 골라야 할까? 


1) 두 번의 결혼 전력이 있는 21살 연상 (단, 추후 나와도 이혼할 수도 있음)
2) 결혼 후 끊임없이 외도를 하는 사람 (
외도의 대상이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음)

 

 

 

 

 

 

질문도, 답도 말이 안 된다. 

 

 

아마 '3) 포기'라는 항목이 있었다면 많은 이들은 3번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한 부부에게 일어났다. 물론 처음부터 미래를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그들의 운명은 지독했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Bettmann Archive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려는 이들은 현실 속 지독한 사랑의 주인공이다. 

 

 

오늘날 그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너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세계는 사랑과 평안이 아닌, 절망과 고통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의 비현실적인 사랑과 그로 인한 고통은 작품 속에 남았다. 

 

 

멕시코의 대표 예술가 부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이야기이다.

 

 

 

 

 

 

 

좌) 디에고 리베라, 우) 입체파에 영향을 받은 작품- <마리에브나의 초상화(Portrait of Marevna)>

 

 

 

 

이야기 속의 남자 주인공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는 멕시코의 사회주의 화가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10살이 되던 해에 산카를로스 미술학교에 들어가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았다. 그는 당시 멕시코 민중예술의 대표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 1852-1913)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위의 오른쪽 그림은 어쩐지 유럽의 화가가 그린 것 같다. 작은 입방체로 한 여인을 그린 이 작품은 멕시코의 민중미술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에 가깝다. 디에고 리베라는 유럽의 몇몇 나라를 다니며 시야를 넓혔다. 그 중 입체파의 대가인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와도 교류를 했으며, 위의 작품과 같이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남겼다. 더불어, 멕시코의 전통 미술에 깊이 매료되었던 그는 문화를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그가 그렸던 벽화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디에고 리베라는 당시 러시아 출신의 여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여성편력으로 끊임없이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가정을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심지어 아내의 친구인 마리에브나 보로베라 스테벨스키라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그에게 결혼의 성스러운 약속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아들을 뇌막염으로 잃었고, 상실감에 빠진 채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겼다. 

 

 

 

 

, Palacio Nacional, Mexico City

 

 

 

 

이탈리아로 간 디에고 리베라는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벽화들을 만났다. 거장들의 벽화에 감명받은 그는 이후 멕시코로 돌아와서 벽화 제작을 돌입한다. 이는 그를 훗날 멕시코의 대표적인 민중 벽화 거장으로 만들었다. 

 

그의 여성편력은 멕시코에 돌아와서도 여전했다. 자신의 예술적인 창조성이 여성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도덕적인 뉘우침은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벽화를 그리고 있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당차게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21살이나 어렸던 그녀는 그에게 작품을 평가해달라며 작품을 두고 갔다. 그녀가 두고 간 초상화에서 그는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좌) 아버지가 촬영한 프리다 칼로, 우) 프리다의 초기 작품 <자화상>

 

 

 

 

그에게 작품을 들고 갔던 당찬 멕시코 소녀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이다. 짙은 갈매기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의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본래 의사를 꿈꿨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겪었지만 학업도, 사랑도 열정적이었던 소녀였다. 그러나 18살이던 해에 인생 전부를 뒤엎는 사고가 그녀를 덮쳤다. 그녀가 하굣길에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한 것이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하는 신체적인 고통을 얻게 되었다. '다친 것이 아닌 부서졌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부서진 듯 보였다.

 

 

침대에 누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손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사진작가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침대 위에 이젤과 거울을 설치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수많은 자화상을 남기게 된다. 평생의 신체적 고통을 안겨준 사고가 그녀를 화가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이후 한번 더 기적이 내렸다. 점차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걷게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줄 예술가를 찾았다. 그 결과, 당시 문화운동을 하며 벽화를 그리던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Frida and Diego Rivera)>

 

 

 

 

 

1929년, 디에고와 프리다는 세 번째 결혼을 한다. 프리다의 부모는 디에고의 여성편력과 두번의 이혼, 그리고 외모까지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디에고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딸의 뜻을 따라 결혼을 승낙했다. 커다란 체구와 큰 눈을 가진 디에고와 작고 왜소한 프리다의 모습에 사람들은 '코끼리와 비둘기'로 그들을 비유했다.

 

결혼 후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대표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아내로 주목을 받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회운동을 했고, 그를 위해 모델이 되어주며 그의 작품 활동을 지지했다.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좌) , 우)

 

 

 

 

 

 

 

그러나 결혼은 그녀를 마냥 행복한 꿈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결혼은 현실이었다. 그의 아이를 갖길 희망했지만, 몇 번의 유산을 반복한다. 이후 불임이라는 진단은 그녀를 더욱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럴 때 남편이 옆에서 아픔을 잘 다독여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디에고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결혼 후에도 여성편력은 지속적이었다. 그러던 중에 프리다 칼로를 매우 힘들게 했던 사건이 또 발생한다. 

 

 

그가 그녀의 여동생과 관계를 가진 것이다. 

그녀의 작품 중 <A Few small Nips>를 보면, 몇 번 찔린 것뿐이라는 한 여성이 매우 처참하게 누워있다. 어찌나 잔혹한지 바닥을 넘어서 액자까지 피가 튀었다. 액자에 묻은 피로 작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품 속에는 한 남자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남자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고통도, 잘못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몇 번 찔렀을 뿐'이라는 느낌으로 아무렇지 않게 서있다. 

 

 

이후 그녀는 꿈꾸던 아내의 역할을 버린다. 그리고 마치 그에게 보여주듯 자유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직업과 나이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졌는데, 그 중에서는 동성도 있었다. 자유로운 연애는 잦은 음주를 동반한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고 그녀의 건강도 더욱더 악화되었다. 

 

그를 지독하게 미워했지만 떠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를 매료시킨 한 남성이 등장한다. 

 

 

 

 

 

 

 

좌) 프리다 칼로와 레온 트로츠키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우) 프리다 칼로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었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를 만난 것이다. 당시 스탈린에게 쫓겨 멕시코로 망명 왔던 그를 디에고 리베라가 불렀고, 트로츠키 부부의 거처로 그녀의 친정집을 제공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프리다 칼로는 평소 자신의 자화상을 친구들에게 선물했는데, 트로츠키에게도 자신의 얼굴이 담긴 자화상을 선물했다. 그녀가 선물한 자화상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처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다. 그림 속에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위엄을 잃지 않은 당당한 여성이 서있다. 그녀가 선물한 자화상을 근거로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날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되었건,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녀의 친정집에 거주하던 트로츠키 부부가 거주지를 옮겼고, 예술가로 인정을 받던 그녀는 전시를 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좌) <두 명의 프리다(The Two Fridas)>, 우)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Self Portrait with Necklace of Thorns)>

 

 

 

 

 

 

그녀는 디에고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로서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루브르에서도 최초로 중남미 여성작가인 그녀의 자화상을 구입했다. 피카소와 칸딘스키, 뒤샹 등 당대의 거장들도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39년 디에고가 프리다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드디어 그들의 지독한 사랑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이혼으로 더욱더 피폐해진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꿈꿨던 부부와는 다를지라도, 디에고는 그녀의 세계에서 견고한 축이었다. 그 축의 부재가 그녀를 더욱더 힘들게 한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기도 전에 신체적인 고통까지 그녀를 다시 덮쳤다. 몇 차례의 대수술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신체의 고통 속에서 삶의 의지를 붙잡고 있을 무렵, 그가 다시 찾아왔다

 

 

 

 

 

 

 

프리다 칼로 <부러진 기둥(The Broken Column)>

 

 

 

 

 

그들은 다시 재결합했다. 디에고의 여성편력은 여전했지만 프리다는 그를 영영 잃느니, 곁에 두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다. 대부분의 날을 누워서 지내야 했고, 대부분의 외출이 제한되었다. 그녀의 마지막을 직감한 디에고와 프리다의 친구들은 그녀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본래 그녀는 참석이 어려웠으나, 누워있던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기면서 그 순간을 함께 맛보았다. 그녀가 살아생전에 멕시코에서 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 전시회였다.

 

 

1년 후인 1954년, 프리다 칼로는 폐렴 증세의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본래 그녀의 이름인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는데, 생을 마감함으로써 그녀가 원했던 평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그녀의 세계는 막을 내렸지만, 이후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삶과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영화와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그녀가 생전에 그린 총 143점의 작품 중 55점이 자화상으로 알려지며, 사후에 멕시코 정부에 의해 모든 작품들이 국보로 지정되는 영광을 맞는다.

 

 

 

 

 

 

 

 나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뿐이다. ”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작품이 초현실주의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그림은 유럽의 모더니즘이 아닌 멕시코의 전통에 근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그렸던 소재들은 초현실이 아닌, 그녀 자신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생생했던 현실이었다. 그 중심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있었다. 프리다의 작품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화풍과 소재부터 그녀의 삶을 교통사고보다 더 크게 흔들었던 그의 영향은 매우 막대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지독하게 증오하며 사랑했던 이들은 운명인 걸까,

 지나쳤어야 했던 사고인 걸까. 

그녀의 삶을 알수록 디에고 리베라의 행동이 원망스럽지만, 

그 덕분에 그녀의 처절하게 깊은 예술세계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가 사망한 후에 네 번째 결혼을 한다. 이후 건강의 이상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떠난 지 약 3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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