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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악마의 재능을 가진 천재 예술가

2020.06.02

 

 

 

 

 

 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조의 이야기

 

 

 

 

 


 

 

 

 

 

 

 

회사 대표의 말 한마디로 주가가 달라지고 작가의 언행으로 작품의 가격이 영향을 받는다. 작품의 예술성과 무관하게 작가의 도덕성으로 작품이 평가되기도 하는데,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예술가의 도덕성'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예술성과 도덕성,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할까? 그리고 예술가에게 용인될 수 있는 도덕성의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그런데 여기, 도덕성에 위반된 행동들로 약 300년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예술가가 있다. 

 

 

 

 

 

그의 죄목은 도덕성에 위반되었다고만 서술하기에는 가히 충격적이다. 오죽하면 후대가 그의 기록을 발견한 곳이 13건의 경찰 기록일까. 기록에 의하면 그의 죄목은 노름, 음주, 폭행, 살인 등으로 다양하다.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바로크 시대의 천재 예술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3-1610)의 이야기이다.

 

 

 

 

 

카라바조 ( Michelangelo da Caravaggio )

 

 

 

 

 

 

 

카라바조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다. ‘카라바조’란 그의 출신지인데, 오늘날에는 본명 대신 '카라바조'로 부르고 있다. 천재 예술가 카라바조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뛰어난 재능으로 바로크 시대의 굵직한 걸작을 탄생시켰으며, 대표작품은 <메두사>, <그리스도의 죽음>, <바쿠스>, <성 요한의 참수>등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와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렸으며, 훗날 루벤스와 렘브란트 같은 대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약 60~80여 점으로 추정되며, 사생활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의 그림을 대중으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메두사(Medusa)>

 

 

 

 

 

 

 

 

오늘날 호러 매체에 영향을 준 <메두사>는 그의 대표작품으로 손꼽는다.

 

 

 

 

꿈틀거리는 뱀으로 변한 머리카락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과, 꽈리를 트는 움직임은 징그럽기까지 하다. 뱀의 모습과 메두사의 놀란 얼굴은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메두사의 인상 쓴 미간, 커다란 눈동자와 벌린 입은 매우 사실적이다. 흥미로운 건, 벽이나 종이가 아닌 둥근 나무 방패에 작품이 그려진 것이다. 마치 철저한 사실에 고증하듯 카라바조는 신화의 이야기와 연관 지어서 작품을 해석했다. 메두사에게 있어서 방패란 죽음을 앞당겼던 매개체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거울 방패에 비춰서 머리를 잘랐던 것과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카라바조의 작품은 '상황 '에 집중한다. 그전의 작가들이 신화 속 인물의 신성함을 그렸다면, 카라바조는 현실적인 상황과 묘사를 그렸다. 이런 그의 해석은 당대에도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래서일까. 신화 속의 메두사가 최고 미인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에 반해, 작품 속의 메두사는 당시의 전형적인 미인상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얼굴이 여성보다는 남성적인 느낌에 더 가깝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카라바조가 본인의 얼굴을 묘사했다고 추측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서 '카라바조 얼굴 찾기'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대표적으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그의 젊은 날의 모습과, 나이 든 현재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그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가며 점차 작품에 조명을 켰는데, 어두운 배경 앞으로 보이는 선명한 인물의 표정이 적나라한 감정을 부각한다.

 

 

 

 

메두사가 핏자국을 선명하게 보였다면,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는 상황에 집중된다. 작품 속의 골리앗과 다윗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거구의 골리앗에 맞서 싸운 작은 다윗의 용맹함이 특징이다. 특히 다윗(다비드)의 용맹함은 많은 예술가들을 감동시켰는데,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다윗의 모습을 크고 당당하게 조각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한 손에는 길고 날카로운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몸짓과 골리앗의 얼굴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런데 누구보다 즐거울 다윗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적장의 목을 벤 장군의 얼굴에서 기쁨의 표정 대신 분노와 슬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골리앗의 표정도 허탈함과 후회, 그리고 황망함이 느껴진다. 마치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이.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두 인물이 카라바조의 얼굴을 담았다면 다윗은 순수하고 거침없던 어린 시절의 그를, 골리앗은 늙고 추악해진 현재의 카라바조가 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더해, 자신의 마지막을 젊은 날의 자신이 끝내는 것으로 구상했다. 

 

 

 

 

이렇게 카라바조는 이상화된 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작품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은밀히 담았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뜨거운 감자였다. '카라바조 얼굴 찾기'와 '상황에 집중한 표현'은 그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완성되었다.

 

 

 

 

 

 

 

 

 

좌) < 바쿠스(The adolescent Bacchus) >,  우) 확대도

 

 

 

 

 

 

 

위의 작품은 분명 신을 그린 작품인데, 자세히 보니 손톱에 때가 껴있다. 이미 그의 작품들을 보았기에 '신성함'까지는 기대를 안 하더라도,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손톱 때가 낀 신이라는 그 어려운걸 카라바조가 해냈다. 

 

 

 

 

바쿠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포도주의 신(술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이다. 그리스 시대에 디오니소스로 불렸지만, 로마시대에 바쿠스의 이름으로 이어진 신화 속 인물이다. 바쿠스는 제우스의 본처인 헤라의 질투로 어머니를 잃고, 떠돌아다니며 포도 재배방법과 와인 제조방법을 알리며 신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바쿠스를 소재로 삼은 작품은 포도와 술이 등장하는데, 신화 속에서 바쿠스가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던 헤라를 도와주면서 '화해의 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작품 속의 바쿠스는 술에 취기가 오른 듯 얼굴이 붉게 변했다. 가득 담긴 과일을 안주 삼아 술 한잔을 하듯 표정에서 미묘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천으로 몸을 한쪽만 가렸는데, 드러난 몸에서의 근육 표현이 꽤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묘사되어있다. 이 작품은 실제 모델을 보며 그린 것으로 알려지며, 바쿠스의 세속적이고 에로틱한 면을 표현했다.

 

 

 

 

 

 

 

 

<병든 바쿠스(Sick Bacchus)>

 

 

 

 

 

 

그는 <바쿠스>에서 멈추지 않고 훗날 <병든 바쿠스>를 그리며 인간적인 신을 한번 더 그렸다. 생기가 사라진 얼굴에선 병약하고 음산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포도주, 즉 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암시하는 것일까. 우아한 자태의 <바쿠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병든 바쿠스>도 카라바조가 자신을 묘사했다고 추측된다. 나이 든 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어쩐지 아프고, 광기에 사로잡히고, 흉망스럽다.

 

 

 

 

 

 

 

 

 

“그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구분하지 않는다”
-델 몬테 추기경, 1610년

 

 

 

 

 

 

카라바조의 죄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살인'인데, 당시 나라에서는 그를 잡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렸다고 한다. 이에 그는 로마를 떠나 피신 하는데 그의 작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를 숨겨주었다고 전해지니,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임에도 여전히 슈퍼스타였다. 

 

 

 

 

그는 황망하게도 39살의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마치 그의 죗값을 받듯이 갑작스럽고,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마치 작품 속의 광기 어린 그의 모습처럼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원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후대에 남지 않길 원했던 것 같다. 이렇게 그의 짧은 생애는 역사 속에서 지워졌다가, 약 300년 후인 1950년에 재발견되었다.

 

 

 

 

사후에 다시 인정을 받아서 혜성처럼 떠올랐던 카라바조는 오늘날 세계의 여러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만큼이나 그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로마의 성당이다. 지우고 싶은 과거였던 그가 성당의 벽화로 후대를 맞이하는 모습이 어쩐지 흥미롭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이자, 

후대의 대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악마의 재능을 가진 예술가 카라바조.

그의 작품은 도덕성과 예술성의 사이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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