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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김환기와 달항아리

2020.06.05

 

 

 

 

 


 

 

 

 

 

 

 

2019년 11월 23일. 한국 미술품 경매가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경매가는 우리나라 미술품 중에서 최초로 100억 원을 넘긴 131억 8,750만 원(수수료 포함 시 153억 5000만 원)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우주>였다. 이 작품은 1971년 김환기 화백의 말년인 '뉴욕시대(1963~1974)'에 제작되었는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우주>는 화면을 가득 채운 빼곡한 점으로 완성된 '전면점화'이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폭으로 구성되었고, 254X254cm으로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작품 속의 무수한 점은 그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인데, 그는 수행하듯 한 점 한 점을 찍으며 그의 마음을 응축시켰다. 

 

 

 

 

 

 

 

 

김환기, <우주(Universe 5-IV-71 #200)>

 

 

 

 

 

 

이 작품은 그의 주치의가 직접 김환기 화백에게 구입했다. 그는 김환기 화백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오랜 친구로, 이 작품을 40년을 넘게 소장해오다가 경매시장에 출품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매는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렸다. 시작가 약 60억 원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예상가를 훌쩍 뛰어넘었으며, 낙찰을 받은 승리자는 외국인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김환기 화백은 스스로의 기록을 또다시 갱신하며 '국내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의 액수를 바꿨다. 국내 미술품 최고가 1~10위 중 9위인 이중섭의 <소>를 제외하고 모두 그의 추상화 작품이 최고가를 기록한 것을 보면, 여전히 그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추상화가이다.

 

 

 

 

 

 

 

 

 

임응식 <김환기>

 

 

 

 

 

 

 

김환기(1913-1974) 화백은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로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그는 자연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그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런 그의 별명은 '항아리 귀신'이었다. 오늘날 백자 컬렉터로 언급될 정도로 그는 달항아리를 종종 수집했다.

 

 

 

 

 

 

 

 

<백자 달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달항아리(달缸아리): 둥근달 모양의 백자(白瓷) 항아리    ]

 

 

 

 

 

달항아리란 둥근 달 모양의 백자이다. 김환기 화백과 친분이 있던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은 달 항아리의 매력으로,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라고 표현했다. 2019년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1억 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도자기의 최고를 기록했으며,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의 소재로도 종종 등장한다. 아트페어에 가면 전시장 한 바퀴만 돌아도 '달항아리'를 주제로 그린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달항아리를 표현한 방법은 작가마다 다른데, 한 작가는 달 항아리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또 어떤 작가는 수행의 도구로 화폭에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달항아리를, 그 시절의 김환기 화백도 많이 사랑했다.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는 그가 수집했던 달항아리를 그의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다. 

 

 

 

+ 안타깝게도 실제의 달 항아리 여러 점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서지거나 사라졌다.

 

 

 

 

 

 

 

김환기 <항아리> 좌) 1950년대경, 우) 1655-56년,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환기 화백의 달 항아리를 보면 그가 표현하고 싶던 고국의 아름다움 느껴진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넘어가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후 유럽의 미술까지 익히고 고국에 돌아왔다. 그후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고, '한국적 요소'로 달항아리를 바라봤다.

 

 

 

 

 항아리는 인내를 갖고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하는 도자기이다. 실제 가마 속에서 달 항아리가 온전히 나올 확률이 매우 낮을 정도로 욕심을 내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최순우 선생의 표현을 빌어 달 항아리는 모양도 색도 기교가 없어서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느낌이지만 동시에 정갈하면서도 고고하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달항아리를 바라보니 이해가 된다.

 

 

 

 

김환기 화백은 고향인 전라남도의 바다를 닮은 파란색을 특히 좋아했다. 그에게 푸른색이란 고국의 바다이자 하늘이었고, 그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 바탕 위에 달 항아리를 그렸다. 달항아리는 단순한 정물이 아닌 화면의 가운데에 놓여진 중심축으로 표현되었다. 신기한 건, 달항아리의 크기가 작품 속 다른 사물들보다 월등히 크지만 위화감이 아닌 조화롭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달항아리의 매력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단순함에서 나온 조화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뜰에는 한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칠야 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김환기

 

 

 

 

 

 

 

 

김환기 <항아리>,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작품에서는 종종 '고국을 생각하는 그리움'이 느껴지는데, 위의 <항아리>는 자신의 컬렉션을 자랑하듯 화사하고 꽉 찬 느낌이다. 실제 그의 사진을 찾아보면 자신의 백자 컬렉션을 뒤로하고 찍은 모습도 볼 수 있는데, '항아리 귀신'이었던 그가 자신의 컬렉션을 보며 얼마나 뿌듯했을지 상상해본다.

 

 

 

그렇게 그는 추상화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까지, 꾸준히 달항아리를 그렸다. 

 

 

 

그에게 있어서 달항아리란,  ' 우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민족적인 소재 '이자 ' 아름다움의 대상 '이었으며  ' 고국 '이자 ' 그 자신 '이었다. 

 

 

 

 

 

 

 

 

 

 

좌) <매화와 항아리>, 중) <항아리와 매화>, 우) <항아리와 매화가지>

 

 

 

 

 

그가 달항아리만큼이나 사랑했던 소재로는 '매화'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달항아리와 함께 매화를 배치한 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둥근 달 모양의 달항아리와 고결한 매화가 잘 어울린다. 매화는 선조들도 사랑한 소재인데, 그들은 추운 날씨에도 세월을 견디며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조선시대의 화가 김홍도 역시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김환기 화백은 항아리와 매화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담았다. 심지어 유학시절에서도 그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항아리와 매화를 그렸을 만큼 애착이 강했다. 어쩐지 매화와 함께 있는 항아리의 작품은, 강하지만 동시에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점점 변화를 겪는다.

작품에 시를 구현하며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형태와 색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추상미술’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그의 달항아리 작품들을 선호한다. 유독 그리움이 묻어난 작품들에 비취지는 그의 모습을,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달이 뜬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을 모습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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