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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사랑꾼 샤갈의 찐사랑

2020.06.23

 

 

 

샤갈과 그의 세상, 벨라의 이야기

 

 

 

 

 


 

 

 

 

 

어릴 적에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다. 답답해서 속을 뻥 뚫고 싶을 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리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주체가 안될 때 상상하곤 했다. 생각만으로도 어찌나 신이 나던지, 상상은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까지 이어졌다. 

 

 

 

 

몸의 성장은 이렇듯 상상을 제한시켰다.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고, 동물은 말을 할 수 없다는 상식은 상상력을 위협했다. 그런데 여기, 98세로 장수한 화가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마치 아이가 그린 듯 자유분방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작품 속에서 하늘을 나는 주인공들을 만나는 재미는 덤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하늘을 날아오르고,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껴안고, 키스한다. 그 모습들은 마치 몽환적이면서도 솔직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그립다. 한 편의 시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작품 속 이야기이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 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동양의 시인에게까지 영감을 준 샤갈은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라는 도시에서 가난한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그의 본명은 모이셰 샤갈이었는데, 유대인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우려해 훗날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샤갈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작품에 고스란히 옮길 만큼 주관이 확고했다. 초기에 이런 샤갈의 화풍을 대중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점차 많은 이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의 초기작인 <나와 마을>은 약 1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손꼽는 대표작품이다. 시인 김춘수도 영감을 받고 <나와 마을>을 닮은 시를 썼는데, 동양과 서양의 미묘한 조화로움이 샤갈의 작품처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샤갈은 작품 속에서 그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를 종종 등장시켰다. 마치 꿈속의 한 풍경과도 같은 모습이다. <나와 마을>에서는 소와 마주 보는 한 사람을 중심에 그렸다. 샤갈은 동물에게 죽은 영혼이 깃든다는 유대교의 종파, '하시디즘'을 믿었는데, 종교의 신앙이 그의 뿌리로 작용하며 작품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영혼이 깃든 동물들과 십자가 목걸이는 주술적인 느낌까지 작품 속에 풍긴다. 그래서일까. 마치 주술의 한 부분처럼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소와 사람의 사이가 원형으로 겹쳐져있다. 가까이서 보니 염소의 젖을 짜는 소녀와 거꾸로 그려진 집, 그 아래에는 낫을 든 남자로부터 도망가는 여성의 모습도 있다. 도망가는 그녀도 거꾸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오롯이 샤갈의 내면세계를 담았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우며 제약이 없다. 그런데 작품을 살펴보니, 곳곳에 담긴 사랑이 보인다. 마주 보는 두 대상(동물과 인간)의 사랑, 두 대상의 십자가 목걸이를 통해 바라보는 신에 대한 사랑, 여러 집으로 묘사된 고향에 대한 사랑이다. 그렇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은 사실 '사랑꾼'이다. 

 

 

 

 

 

 

 

 

 

 

“ 미술은 사랑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마르크 샤갈

 

 

 

 

 

 

 

벨라와 샤갈

 

 

 

사랑에 대한 명언으로만 봐도 그는 뼛속부터 사랑꾼이었다. 오죽하면 파리에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던 중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고향에 돌아왔을까. 샤갈이 파리로 오면서 연인과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졌는데, 샤갈이 점점 멀어지는 연인의 마음을 느끼고 황급하게 돌아와서 그녀를 다시 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샤갈의 '찐사랑'이었다. 샤갈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뮤즈이자 곧 샤갈의 전부였다. 샤갈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벨라 로젠벨트'이다. 

 

 

 

 

이러한 샤갈의 행보는 다른 유명한 화가들과 비교된다. 여성과의 쾌락을 영감의 원천으로 생각해 바람을 피우는 여러 유명화가들과는 달랐다. 샤갈에게 '영감의 원천'은 오롯이 그녀, 벨라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샤갈은 벨라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진정성은 그녀에게도 통했다. 샤갈은 결국 그토록 바라던 그녀와의 결혼에 성공했고, 이 결혼을 통해 그의 인생도 새로운 막을 열었다. 

 

 

 

 

 

 

 

 

좌) <에펠탑의 신랑신부(The betrothed and Eiffel Tower)>, 우) <생일(The Birthday)>

 

 

 

 

 

 

 

그녀와의 결혼은 샤갈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었다. 어찌나 행복했던지, 샤갈의 작품 속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샤갈과 벨라였다.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이제 막 결혼을 마친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나와 마을>과 마찬가지로 동물이 크게 그려져 있다. 마치 그들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려는 듯 닭은 한쪽을 응시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푸른색의 에펠탑과 움직이는 악기와 염소, 그리고 연주하는 사람 등이 보인다. 마치 샤갈의 마음을 헤아리듯 모두가 그들을 축복하고 있다. 푸른 구두를 신은 신부는 단아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제 곧 신랑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를 예정인데, 살짝 짓는 미소가 매우 우아하다. 샤갈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모두 담았다.

 

 

 

 

그의 뮤즈 벨라와 결혼하기 몇 주전에 채색한 <생일>도 매우 로맨틱한 작품이다. 작품 속의 벨라는 꽃을 든 채 갑작스러운 키스에 깜짝 놀란 얼굴이다. 그녀를 놀라게 한 인물은 샤갈인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아올라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목이 완전히 꺾여서 아플 듯한데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고통보다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작품 속의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평범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렇게 평범한 공간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매우 특별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작품이 그려질 당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대전 직후이다. 샤갈과 벨라는 결혼을 위해 고향 비테프스크에 머물렀는데 그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샤갈은 전혀 개의치 않은듯하다. 샤갈에게는 이미 '벨라'라는 따뜻한 세상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작가들이 세계대전의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초현실의 세계에 빠졌다면, 샤갈은 오롯이 그녀라는 세상에 빠져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와의 결혼을 기점으로 샤갈의 작품 속에서는 사랑과 벨라가 동의어로 표현된다.

 

 

 

 

 

 

 

 

마르크 샤갈 <산책(The Promenade)>

 

 

 

 

 

 

전작의 작품들이 샤갈이 벨라를 이끌고 하늘을 날려는 모습이었다면, <산책>에서는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벨라는 마치 그를 꿈과 희망의 나라로 인도하는 듯 손을 잡고 이끌고 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여성을 넘어서 신으로도 느껴진다. 이러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는지, 샤갈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샤갈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듯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녀의 손을 잡고 떠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건 기쁜 얼굴에서 느껴지는 안정적인 자세는 벨라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스란히 알게 해 준다. 

 

 

 

 

<산책>은 샤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진다. 두 인물 외에도 전체적으로 절제된 색의 표현이 이전과 비교된다.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도 있을 구성이지만, 작품의 곳곳에는 색의 화려함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심었다.

 

 

 

 

 

 

 

마르크 샤갈 <도시 위에서(Over the Town)>

 

 

 

 

 

혹자는 샤갈의 작품들이 '한 편의 사랑이 담긴 동화'를 보는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샤갈은 벨라와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을 꾸준히 화폭에 담았다.

 

 

 

 

<도시 위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는 샤갈의 작품 중 하나이다. 벨라의 손에 이끌린 샤갈은 이제 그녀를 품에 안고 하늘을 날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이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떠다니는 구름처럼 벨라와 함께하는 샤갈은 둥실둥실이라는 표현과도 잘 맞는다. 고향 비테프스크를 연상하는 도시를 두 남녀는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벨라가 감염으로 갑작스럽게 죽게 된 것이다. 샤갈에게 벨라의 죽음이란 세계대전의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벨라라는 한 세상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던 샤갈은 약 9개월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작품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을 땐, 벨라를 추억하는 작품이 그 시작이었다. 

 

 

 

 

 

 

 

 

벨라를 떠나보낸 샤갈은 땅으로 내려왔다.

 

 

 

마르크 샤갈 <화촉(The Wedding Candles)>

 

 

 

 

 

벨라를 떠나보낸 샤갈은 땅으로 내려왔다. <화촉>은 그녀를 떠나보낸 후 그린 작품이다. 화면의 푸른 한쪽면이 그녀를 부르듯 음산하다. 작품 속에서 벨라는 <에펠탑의 신랑 신부>와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샤갈은 마치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했던 그때를 붙잡고 싶은 모습이다. 

 

샤갈은 그녀의 부재로 힘든 마음을 푸른색으로 작품 속에 표현했다. 푸른색은 이 작품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샤갈의 푸른색을 '환상적'이라며 환호했다. 

 

 

 

 

 

 

“ 예술에도, 삶에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

 

                                                                                   -마르크 샤갈

 

 

 

 

 

 

샤갈은 살아생전에 루브르에서 전시를 하며 유명세를 누린 작가이다. 98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자신의 인기를 누리며 한 세기를 산 축복받은 예술가이기도 하다. 샤갈의 화풍을 많은 이들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부른다. 그러나 샤갈은 자신의 내면 속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초현실'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꾸준하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했으며, 상식과 비상식의 구분을 작품에 두지 않았다. 그 후 점차 작품세계를 넓히며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 도자기, 천장화까지 섭렵하는 예술가로 남았다. 

 

 

 

 

사랑꾼 샤갈에게 벨라는 연인이자 뮤즈이며 한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보낸 그가 멀쩡하게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란 어려웠다. 보다 못한 그의 딸이 한 여성을 소개해줄 정도였으며, 그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벨라 이후에도 그는 몇 명의 여성을 만나며 삶의 활력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사랑꾼 샤갈에게 사랑이란 뗄 수 없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벨라와 같은 영감을 줄 수는 없었다. 샤갈과 벨라, 그들은 그렇게 작품으로 함께 남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을 선사해줬던 샤갈과 그의 찐사랑 벨라와의 이야기, 그녀를 담은 작품에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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