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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모네의 <수련>은 왜 유명할까

2020.09.05

 

 

 

 

 

 

 

 

 

 

 

인상파의 창시자, 모네의 <수련>연작

 

 

 

 

 

 

 

 

 

 


 

 

 

 

 

 

 

 

 

 

 

 

 

 

 

 

 

프랑스 파리의 곳곳을 담았더니 하나의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주인공이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동경했던 예술가들을 만나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각 예술가들을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마치 영화 한 편으로 파리 여행을 다녀온듯한 기분까지 들게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네이버 영화

 

 

 

 

 

 

 

 

 

그 중 오랑주리 미술관은 특히 반갑다. 이곳은 모네의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두 개의 타원형 전시실에 <수련> 연작이 채워져 있다. 루브르와 오르세를 보려고 파리에 갔다가, 오랑주리 미술관만 무수히 방문했던 지난 추억이 떠오른다.

 

모네는 말년에 종전 기념으로 <수련> 연작 중 8점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단, 조건이 있었다. 작품을 영구 전시할 것, 일반 시민에게 공개할 것,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하게 할 것, 자연광 아래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할 것이었다.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그가 구상했던 거대한 수련 그림으로 벽 전체를 둘러싼 방 '이 만들어졌다. 도대체, 모네의 <수련>이 어떠한 그림이길래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까지 미술관이 만들어진 걸까?

 

 

 

 

 

 

 

 

 

 

 

 

 

 

 

 

 

 

대상의 모습은 빛에 의해 달라진다 "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 @Félix Nadar, 1899

 

 

 

 

 

 

 

 

 

 

 

 

 

빛의 화가, 인상파의 창시자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가 처음부터 작품으로 빛을 표현했거나, 새로운 회화를 열고자 하는 큰 야망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으며 '순간포착'에 뛰어나서 주변인들을 그려주며 짭짤하게 돈을 벌었을 뿐이었다. 당시 유행중인 사실적인 회화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뚜렷한 작품 활동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알아본 예술가, 외젠 부댕(Eugène Boudin)에 의해 야외로 나가면서 '풍경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풍경화가 요한 바르톨드 용킨트(Johan Barthold Jongkind)까지 만나게 되었고, 오늘날 그를 있게 한 '빛을 포착하는 기법'을 익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연의 빛을 포착하고 인식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 인상주의의 시작을 열게 되었다..

 

 

 

 

 

 

 

 

 

 

 

 

 

 

‘ 나는 결국 눈이 열렸다. 

자연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

 

 

 

 

 

 

 

 

 

 

 

 

좌) 양귀비 들판, 중) <파라솔을 든 여인- 카미유와 장>, 우) <생 라자르 역>

 

 

 

 

 

 

 

 

 

 

 

 

그는 자신에게 친숙한 공간, 인물을 주로 그렸다. 그리고 이를 인상에 따라 그린 불명확한 형체와 따뜻한 색감으로 담았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미술계에 외면을 받았다. 당시 인기 있던 사실적인 묘사와 옛 거장들의 화풍을 이어받은 그림을 그리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뜻이 맞는 몇몇의 예술가들과 독자적인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비평가들의 조롱 담긴 '인상주의자'라는 말을 도리어 스스로에게 붙였다. 그렇게 주위의 안 좋은 시선과 평가에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지켜나갔다.

 

 

 

 

 

그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며 한 공간을 여러 번 그렸다. 건초더미와 기차역 등이 그 대상이었는데, 그가 포착한 빛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다른 색감으로 작품 속에 등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덧 인상주의는 더 이상 조롱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에 모네는 어려서부터 자연을 동경한 마음을 떠올려 우연히 발견했던 지베르니에 자신의 공간을 꾸렸다. 집은 창문을 크게 만들어서 햇살이 잘 들게 했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꾸몄고, 뒤이어 연못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는 한 평생을 작품에 매진했다.

 

 

 

 

 

그리고 연못의 설치는 그를 <수련>으로 이끌었다.

처음부터 수련을 그릴 생각으로 연못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심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표현대로, 갑자기 지베르니의 연못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고, 즉시 팔레트를 집어 들었다 '

 

 

 

 

 

마침내 모네 작품의 정수로 평가받는 <수련> 이 시작되었다.

 

 

 

 

 

 

 

 

 

 

 

 

 

 

좌) <수련>, 우) <흰색 수련 연못>

 

 

 

 

 

 

 

 

 

 

 

 

 

'수련'은 땅속줄기에서 자라서 물 위에서 잎을 피는 수중식물이다. 꽃은 6~8월에 피는데 그마저도 낮 동안 활짝 피다가 밤이 되면 오므라들어서 '잠자는 연꽃'이라는 이름의 '수련(睡蓮)'으로 부른다. 

 

 

 

 

 

모네는 '수련'을 약 30년 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그림으로 남겼다. 그가 남긴 수련 소재의 작품만 해도 약 250점이라니, 얼마나 집착하며 그렸을지 가히 상상이 안된다.

 

 

 

 

 

초기에 그린 <수련>을 보면 활짝 핀 수련 두 송이가 잎과 함께 물에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형체를 비교적 명확하거나, 연못에 설치한 일본식 아치형 다리를 함께 그렸다. 구도와 장소를 비슷하게 설정해서 그림을 그렸으며, 때에 따라 변하는 빛을 색감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내가 본 것만을 그릴 수 있다'는 그의 의지가 작품 속에서도 잘 드러나있다.

 

 

 

 

 

 

 

 

 

 

 

 

 

 

 

 

 

“ 사람들은 이해가 꼭 필요한 것처럼 내 예술을 논하고 이해하는 척한다. 

단순히 사랑하면 되는데도.. ”
 

                                                                                                                    -클로드 모네

 

 

 

 

 

 

 

 

 

 

 

 

 

<수련>, 1903

 

 

 

 

 

 

 

 

 

 

 

 

 

 

그는 물 표면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수련을 그리기 위해 매일 아침 연못으로 향했다. 점차 수련의 형태도 초기와는 다르게 하나의 인상으로 표현되었다. 그 당시의 풍경화와는 다른 시도였다. 오직 캔버스에 수련만을 가득 채웠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봐야 수련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시도는 훗날 추상회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늘'도 <수련>에 담기기 시작했다. 날씨에 따라 다양한 빛과 색감으로 떠있는 하늘이 연못에 비추자 그 장면을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수련과 연못이라는 대상을 통해 자연의 색감을 작품 속에 다채롭게 표현했다.

 

 

 

 

 

그는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한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집착은 끊이지 않았으며, 이는 곧 자신의 '그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수련 연못>

 

 

 

 

 

 

 

 

 

 

 

 

 

 

캔버스를 바꿔가며 빛을 그리려는 노력은 안타깝게도 백내장을 불렀다. 하루 종일 빛을 따라가니 시력 손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점차 대상이 뿌옇게 보였고, 이는 그의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 차례의 수술을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점차 색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꼈다.

 

예술가의 눈을 가려버린 악조건 속에서도 모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시력을 다 잃기 전에 더 그림을 그리기를 희망했다. 

 

 

 

 

 

 

 

 

 

 

 

 

 

<수련 연못>

 

 

 

 

 

 

 

 

 

 

 

 

 

그의 <수련> 연작은 순간적인 인상을 화폭에 담으려는 그의 예술 철학과도 이어졌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못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거친 붓질과 그리다가 만 느낌이 들 정도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이는 곧 그의 자연에 대한 시선을 나타냈다. 하나의 형태가 아닌 빛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을 붓질 하나하나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멀리서 떨어져 보면 연못에 반사된 하늘과 나무와 연못의 깊이가 느껴진다. 모네의 말년을 바친 완성된 예술이 화폭에 표현되었다.

 

 

 

 

 

 

 

 

 

" 내 운명은 자연의 법칙이나 조화를 그림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 외 다른 운명은, 단 한 번도 갈망한 적이 없다. "

 

                                                                                                  -클로드 모네

 

 

 

 

 

 

 

 

 

모네는 인상주의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인상주의 예술가이다. 끝까지 인상주의 화풍을 고수했으며, 덕분에 새로운 여러 화풍들의 그의 소신 위에서 피어났다.

 

혹자는 그의 그림에서 음악적인 멜로디가 느껴진다고 한다. 그만큼 연못의 잔잔한 표면, 그 아래에서 움직이는 경쾌한 움직임, 그리고 모든 자연을 포용한 대범함이 담겨있다.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위대한 걸작'이라는 평가처럼 완벽하게 그의 작품을 표현하는 문구가 또 있을까 싶다.

 

날마다 새로운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봤던 클로드 모네. 

그의 시선을 따라 글을 통해 그 시절 파리의 빛을 함께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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