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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아슬아슬한 경계의 기준

2020.09.11

 

 

 

 

 

 

 

 

 

 

 

패러디, 오마주, 표절에 대해서

 

 

 

 

 

 

 

 

 

 


 

 

 

 

 

 

 

 

 

 

 

 

 

 

'L.H.O.O.Q'

 

 

 

 

 

불어로 발음하면 'elle a chaud au cul'가 되어서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로 들린다.

낯부끄러운 문구에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하필 그 문구가 프랑스의 만인의 연인 <모나리자> 엽서에 쓰여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마르셀 뒤샹 

 

 

 

 

 

 

 

 

 

 

 

 

1919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타계한 지 40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를 기억하고자 <모나리자> 엽서가 길거리에 등장했다. 모나리자는 이미 그 오묘한 미소로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 젊은 예술가가 만인의 연인 모나리자의 얼굴에 턱수염을 그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L.H.O.O.Q'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치 명작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하듯 과감한 시도를 한 이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었다. 이미 <샘>으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예술가의 만행(?)에 모두가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좌) 만 레이가 촬영한 마르셀 뒤샹, 우) 마르셀 뒤샹 <샘> @tate.org.uk

 

 

 

 

 

 

 

 

 

마르셀 뒤샹은 개념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현대미술의 개척자로 불리는 예술가이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등 다양한 화풍으로 작업했지만 이후 예술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샘>을 출품하면서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를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접한 이들이라면 뒤샹의 와 <샘>을 보고 의아할 수 있다. 이미 난해하고도 어려운 예술작품들을 수없이 접했기에 '겨우?'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난해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장본인 중 한 명이 마르셀 뒤샹인 것이다. 그는 온전한 창작 작품만을 예술로 봐야 할지, 기성품도 예술가의 손을 거친다면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었고 이는 곧 전통미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생각은 <샘>을 통해 대중에게 던져졌다. 작품의 조형성보다 개념이 우선되는 개념미술을 선보였고, 뒤이어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린 후 성적인 조롱이 담긴 문구도 등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는 그의 가 미술작품의 '패러디'예시에 소개가 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현대 미술시장에서 패러디, 오마주, 그리고 표절에 관한 부분까지 다양한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패러디이고, 어디까지를 오마주와 표절로 봐야 하는 것일까? 알지만 애매한 그 차이, 함께 짚어보자.

 

 

 

 

 

 

 

 

 

 

 

 

 

 

 

 

 

패러디(parody)

 

 

 

 

패러디는 그리스어 파로데이아(parodeia)에서 유래했다.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닌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기법상 또는 철학적인 것)을 폭로하는 것이며,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고 분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르셀 뒤샹  @wikipedia

 

 

 

 

 

 

 

 

 

 

 

다시 마르셀 뒤샹의 로 돌아가 보자. 

 

 

 

 

 

아마 이 작품이 지나가는 이의 '낙서'라면 오늘날 여러 미술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구를 적은 이는 예술가였고, 그 예술가는 기존의 가장 권위 있는 미술작품에 도발적인 문구와 의미를 전달했다. 결과는 이 작품이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만행(?)을 통해 '중산 계급 문화에 대한 공격'과 '초상화 속의 숨은 자아를 발견하고 전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동시에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비판했다. 이렇듯 누군가는 웃고 넘기거나, 혹은 경악할 수도 있는 그의 는 <모나리자>를 넘어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물음표를 던졌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의식은 다른 패러디와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여러 현대미술 작품에서 <모나리자>뿐만 아니라 명화(또는 많이 알려진)를 패러디한 예술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패러디는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이미지를 차용해서 익살스럽게 표현하거나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오마주(Hommage)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한다. 영화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일종의 경배 및 헌사로 특정한 장면을 모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 모네 <샤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우)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인상파의 창시자인 모네는 존경하는 예술가, 에두아르 마네(Manet)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샤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당시 여러 비평가들과 대중들을 경악시켰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당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같은 시기에 출품된 나체의 여성을 그린 작품은 '신'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 때였다. 그만큼 아름다움과 외설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했고, 이러한 시기에 마네의 작품 속 여성은 당당하게 캔버스 밖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마네는 비평가들과 대중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 동시에 모네와 같은 젊은 예술가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가서 그의 명성을 높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모네는 존경하는 마네에 대한 존경심과 지지, 그리고 자신도 마네와 같은 충격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오마주 했던 작품을 출품하려고 했다. 작품명도 마네를 비슷하게 따라갔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출품되기도 전에 전시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선보이지 못했고, 이후 가난한 환경 탓에 작품을 집주인에게 담보로 맡기기까지 했다.

 

 

 

 

 

 

이후 모네는  <샤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을 집주인으로부터 되찾았는데, 이 사례를 통해 모네가 작품에 느꼈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되찾은 작품은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세 조각으로 작품을 잘랐지만 세 번째 부분은 유실되었다. 

 

 

 

 

 

 

이렇듯 패러디와 오마주는 작품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한 것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패러디가 작품에 대한 익살스러운 표현이나 비판 의식을 담았다면, 오마주는 창작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종종 기사에서 언급되는 '표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표절(plagiarism)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이다. 보통 학문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출처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저작을 인용하거나 차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기본적으로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대 미술에서 '표절'을 예로 들 때 종종 언급되는 예술가가 있다. 

살아있는 가장 비싼 미술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Jeff Koons, 1955~)이다. 

 

 

 

 

 

 

 

 

 

 

 

 

제프 쿤스 <끈처럼 이어진 강아지들> @제프 쿤스 공식 홈페이지

 

 

 

 

 

 

 

 

 

 

 

제프 쿤스는 모 백화점에서 거액을 주고 작품을 구매했을 정도로 미술 애호가에게는 친근한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 가는 결코 친근하지 않은데, 작품의 경매가가 몇 백억 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는 남이 부럽지 않을 듯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표절 시비에 휘말렸고 패소를 했다. 

 

 

 

 

 

<끈처럼 이어진 강아지들>은 어느 노부부가 귀여운 강아지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1988년 이 작품을 출품 후 거액에 판매했는데, 그로부터 일 년 뒤 한 사진가에 의해 소송에 휘말렸다. 아트 로저스라는 사진가는 이 작품이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비슷하며, 제프 쿤스 측에서 아무런 언질 없이 무단으로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아트 로저스의 사진 원작 @사진마을, 2011.06.14, 곽윤섭기자

 

 

 

 

 

 

 

 

 

 

 

1980년, 아트 로저스는 한 부부의 부탁으로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을 안고 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실제 이 사진으로 엽서를 찍어서 판매도 했는데, 그 사진을 본 제프 쿤스가 조각가에게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라고 주문하며 <끈처럼 이어진 강아지들>이 나온 것이다. 제프 쿤스 측은 매우 흔한 소재라며 항변했으나 법원은 사진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의 사진을 독창적으로 바라봤고, 이에 제프 쿤스는 무단복제 죄목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제프 쿤스의 표절 시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1988년 작품인 <겨울 사건>이 프랑스 의류 브랜드 '나프나프' 광고와 흡사하다며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좌) 제프 쿤스 <겨울 사건> @제프 쿤스 공식 홈페이지, 

우) 프랑스 의류 브랜드 '나프나프'광고 @SBS취재파일, 2018.11.12, 김수현

 

 

 

 

 

 

 

 

 

 

 

돼지와 누워있는 여성의 동작과 몇 가닥으로 갈라진 여성의 머리카락은 광고 감독의 주장대로 광고와 매우 흡사했다. 광고의 감독이었던 프랑크 다비도비시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제프 쿤스는 '패러디'라며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 제목과 모델의 표정, 그리고 동작 등이 동일함을 이유로 광고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살아있는 가장 비싼 미술가는 표절 미술가로 다시 한번 낙인이 찍혔다.

 

 

 

 

 

이렇듯 표절은 법원의 소송으로 이어지며, 표절로 확정될 경우 손해배상이 청구된다. 이는 표절이 창작물을 훔치는 행위이므로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표절에 대한 판단기준이 다소 미흡하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있지만 '표절을 했는지'에 대한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이 있지만 피카소의 명언(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을 예로 들며 모방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표절의 시시비비를 '작가 개인의 양심 문제'로 바라본다.

 

 

 

 

 

 

패러디와 오마주, 그리고 표절. 

세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법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한 인터넷 기사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원작을 알면 재미있는 것은 패러디 

원작을 알리고 싶은 것은 오마주

원작을 감추고 싶은 것은 표절'

 

 

 

 

 

이보다 더 시적이고 명확한 한 줄 문구가 있을까.

그 기사에서도 어떤 이의 댓글에서 이 문구를 봤다고 기록했는데, 그가 옆에 있다면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명쾌한 정리이다. 

 

 

 

 

 

모든 예술작품에는 각각의 고유한 생명력이 담겨있다.

예술작품에는 아이디어와 그것이 형상화되는 과정을 통해 느꼈을 감정, 작가가 그동안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 등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 들어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로 통칭해서 대상을 마주한다. 때로는 그 예술작품을 누군가 패러디하거나, 경외심을 느끼고 오마주를 하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모든 예술가가 부끄럼 없이 자신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길, 

누군가의 창작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멈추길 글을 마무리하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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