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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밀레가 담은 가을의 내면

2020.10.10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가을’에는 연상되는 단어가 계절의 색감처럼 다채롭다. 붉은 단풍, 노랗게 익은 곡식, 추석과 추수감사절 등 풍요로움이 동반한다. 알록달록한 순간들만큼 낙엽이 지는 쓸쓸함, 그리고 누군가는 곧 다가올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모습도 모두 가을에 함께 있다. ‘가을 탄다’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가을의 대표 작품인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작품이다. 따뜻한 가을의 색감이 담긴 그 계절속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는 프랑스 풍경화가로 이루어진 바르비종파의 대표화가이다.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에 인정받은 그림실력으로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유학 갔다. 파리의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를 나왔을 만큼 당시 미술계의 인정 코스를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주최하는 회화 콩쿠르인 로마상에서 수상에 실패하고, 이어서 도시에 콜레라가 퍼지면서 이를 피해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으로 이사 온다. 그 결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의 이름 석자를 있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다른 바르비종 화가들과는 다르게 농민 생활을 유독 많이 남겼고, 이는 ‘농민 화가’라는 별명까지 붙게 했다.

 

 

 

 

 

 

 

 

 

 

 

“ 일생을 통해 전원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되도록 능숙하게 표현하려 할 뿐이다

 

 

 

 

 

 

 

 

 

 

 

밀레는 씨를 뿌리고 키질하는 사람, 이삭을 줍는 사람 등 소재를 가까이에서 찾았다. 그가 표현한 작품 속 농민은 그저 지치고 힘든 이들이 아니었다. 편견에 사로잡힌 해학이 아닌, 경건하고 진지하며 아름답게 그들을 표현했다. 산업사회가 속에서 농민이란 그에게 가난하고 배고픈 자, 혹은 낯설고 어려운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농부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가 ‘일생을 통해 솔직하고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씨 뿌리는 사람>,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 <만종>,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삭 줍는 사람들>이 그의 대표 작품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가을’에 떠오르는 대표작품이다. <이삭 줍는 여인들>의 원제는 Des glaneuses(불어, 영어로는 The Gleaners)로 국내에서는 <이삭 줍는 여인들>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삭 줍기>, <이삭 줍는 사람들>로도 부른다.

 

 

 

 

 

노랗게 익은 가을의 배경 안에서 곡식을 거둘 때 흘린 낟알인 이삭이 땅에 흘려져 있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 이삭을 줍고 있는데, 다른 이가 흘리고 간 것을 주워서 먹는 이삭을 식량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생존수단과도 같은 모습이자 어쩌면 가장 홀대 받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밀레는 그 모습을 어떠한 조롱이나 선입견없이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아름다운 여신들인 삼미신처럼 세 여인이 전면에 있다. 이삭을 줍는 모습과 복장으로 알 수 있듯이 부유한 여인들은 아니다. 어찌나 햇빛을 많이 받았는지 그을려진 피부는 땅의 색감과도 닮았다. 전체적으로 가을의 브라운 톤이 작품 곳곳에 묻어났는데, 프랑스의 국기 같은 여성들의 두건이 눈에 띈다.

 

 

 

 

 

 

 

 

 

 

 

 

 

 

일이 많이 고되었던 건지, 허리조차 제대로 피지 못하고 서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옷도 꽤나 무거워 보인다. 가운데에 있는 여인이 가장 숙련된 모습인데, 팔토시를 하고 이삭을 옷의 주머니에 넣으며 일하는 모습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를 기준으로 왼쪽의 여인은 팔토시와 주머니를 준비하지 못해서 등 뒤의 손에 이삭을 쥐었고, 오른쪽의 여인은 구부정한 자세로 잠시 쉬는 듯하다.

 

 

 

 

 

뒤쪽으로는 그녀들의 현재와 다른 현실이 공존한다. 저 멀리 보이는 건초더미는 그녀들이 손에 쥔 이삭과 대비되게 수북하다. 이삭을 땅에 남긴 이유로는 성경의 오랜 제도로 보인다. 성경 구약에는 추수할 때 떨어진 이삭을 가난한 자가 먹을 수 있도록 주인이 줍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이 제도가 곧 작품 속 모티브이다. 안타깝게도 이삭줍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태가 변질되었다. 가난한 이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주어진 시간안에 주인의 허락 하에서 손으로만 주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생겨났다. 말을 타고 지켜보는 사람과 그 뒤의 집들을 작품 속 주인공들의 뒤에 배치했다. 밀레는 그때의 현실 속 차별을 작품속에 덤덤하게 녹였다.

 

 

 

 

 

그럼에도 밀레의 작품이 마냥 슬프거나 황망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곳곳에 운율과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는 시적인 작품을 그렸다. 예를 들어 약 50년 후 에곤 실레가 표현한 가을의 모습을 보면 밀레의 시적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밀레가 그의 생각을 수수께끼처럼 감췄다면, 에곤 실레는 그에 비해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 <가을 해와 나무들>(1912년)

 

 

 

 

 

 

 

 

 

 

 

 

 

에곤 실레가 표현한 가을의 모습은 밀레에 비해 적나라하다. 그의 <가을 해와 나무들>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함께 유명한 가을 대표 작품이다. 산 위의 나무가 햇살을 받으며 산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이미 단풍이 지나고 난 후일까, 갈색으로 물들은 산에서는 낙엽이 쌓여 있다. 저 멀리 강한 햇빛이 보이지만, 어쩐지 햇살보다 바람이 더 느껴진다. 나무 두 그루를 그렸을 뿐인데 밀레의 작품보다 애처롭게 느껴진다. 

 

 

 

 

 

이렇듯 밀레는 현실과 그의 생각을 가을이라는 계절과 그 소재의 이면에 감춰서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또다른 대표작품인 <만종>에서도 잘 드러난다. 

 

 

 

 

 

 

 

 

 

 

 

 

 

 

밀레 <만종>(1857~1859년)

 

 

 

 

 

 

 

 

 

 

<만종>은 한 부부가 성모마리아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할머니가 만종에 맞춰서 가여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렸는데, 종소리가 들판에 가득 울려 퍼지는 느낌이다. 마치 작품 넘어 들리는 종소리에 보는 이의 마음까지 숭고하고 경건해지는 ‘보이는’그림을 담았다.

 

 

 

 

 

이들 부부 역시 부유하거나 영웅적인 인물들은 아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당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농민들이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종>에서도 밀레는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그들을 비하대신 오히려 숭고하게 표현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오히려 그들의 하루를 인정하는 운율이 느껴진다. 

 

 

 

 

 

 

 

 

 

 

 

 

 

 

 

 

 

 

 

 

 

 

 

 

 

 

이렇게 밀레는 당시 미술계가 요구하는 그림이 아닌, 농민들의 일상을 경건하고 숭고하게 담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깃든 아름다움이 신성하게 보일 정도이다.

 

 

 

 

 

당시 이 작품은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다. ‘빈곤을 권장하는 세 여신’이라는 조롱과 혁명의 느낌이 난다는 비난도 포함되었다. 살롱의 품위를 떨어트린다는 생각에 미술계의 시선도 냉담했다. 

 

 

 

그럼에도 밀레는 가난하고 고단한 현실을 진지하게 담았다. 찰나의 순간인 이삭을 줍는 모습은 안정감 있는 구도와 색감으로 표현했다. 마치 그들의 존엄성까지 화폭에 담으려는 듯하다. 이후 밀레는 풍경화에 매료되어서 고향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만의 정신이 담겼던 작품들은 모네, 세잔, 고흐, 달리 등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으로 전해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농촌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몇 년 후 고가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족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를 축적하는 건 그의 그림을 거래하는 특정 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사례를 계기로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밀레가 남기고 간 것은 비단 화풍과 작품만은 아닌 듯하다.

 

 

 

 

가을에 떠오르는 대표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은 그 어느 작품들보다 가을의 외면과 내면을 잘 드러낸다. 따뜻한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과 곡식의 수확으로 풍요로움을 들여다보면 쓸쓸함과 고독함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가을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내 주변에서도, 그리고 내 스스로가 가을의 화려한 색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지치진 않는지 생각해본다. 또다시 성큼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가을의 따뜻함을 잠시나마 함께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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