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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 Spoon

백성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힙(Hip)’

2020.10.18

 

 

 

 

 

 

 

 

 

가장 한국적인 그림, 민화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작한 영상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미 조회수 기록이 총 2억 6천만 뷰를 넘었는데, 놀랍게도 유명 아이돌이 주인공도 아니고 먹방이라는 소재도 아니다. 자칫 '어렵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판소리를 명창이 부르고, 때로는 전통음악에 맞춰 신명 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그 배경에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홍보영상이다. 그런데 이 영상을 두고 국내와 세계 곳곳에서 '힙(Hip)하다'라며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백성들이 표현한 ‘힙(Hip)’한 그림들이 있다.

바로 ‘민화’이다.

 

 

 

 

 

 

민화란 어떠한 틀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백성들의 그림이다. 18세기~19세기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름이 없는 수많은 백성들에 의해 그려졌다. 백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벌레와 꽃, 잉어, 나비, 까치, 그리고 호랑이까지 모두 민화의 소재로 그렸다. 민화를 두고 양반들은 한때 '저속하다'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나라 민화와 같이 귀족이나 화원이 아닌 백성이 그린 그림들은 세계 각국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만 백성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한국의 민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불린다. 

 

 

 

 

 

 

 

과연 민화가 무엇이기에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부르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 

힙한 우리의 그림, '민화'를 함께 알아보자.

 

 

 

 

 

 

 

 

 

 

 

 

 

 

 

 

 

 

작자미상, 호랑이와 까치 @네이버 학습 용어 개념사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친밀한 민족이었다. 친밀하다는 뜻은 편안하고 친숙하기보다는, 호랑이와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에 가깝다.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호랑이가 잡아간다'라고 겁을 줄 정도로, 호랑이는 무섭고 위협스러운 전래동화 속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함께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백성들의 그림에서 이상한 몰골로(?) 등장했다.

분명 생김새는 호랑이가 맞는 듯한데, 어쩐지 눈은 삐뚤고 생김새가 요란한 느낌까지 든다. 더 신기한 건 <까치 호랑이>로 불리는 '작호도'가 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그림이라는 것이다.

 

 

 

 

 

 

 

 

 

 

 

 

 

 

작자미상, 까치호랑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반적으로 그림 속 '까치'의 의미는 좋은 소식, 반가운 손님을 상징한다. 전래동화 속에서 박씨를 물고 온 까치의 이야기처럼, 선조들은 귀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그림에도 담았다. '호랑이'의 '호(虎)'는 범과 호랑이라는 뜻 외에도 '용맹스럽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는데, 이에 그림 속 호랑이도 용맹하고 수호신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졌다. 그래서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있는 그림은 '좋은 소식을 부르고 나쁜 소식을 막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까치와 호랑이가 민화 속에서 등장하자 새로운 의미가 스며들었다. 

백성들이 그린 까치는 힘이 없고 나약한 그들, 백성과 민중을 상징했고, 호랑이는 강한 권력을 지닌 양반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백성들은 <까치 호랑이>에서 두 등장인물을 같은 시선에 놓았다. 까치가 호랑이를 피해서 숨거나, 도망가거나, 혹은 나약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두 등장인물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으로 동등한 위치처럼 그려졌다. 아니, 오히려 호랑이를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럽게 그렸는데 심지어 그 모습이 '바보'같아 보인다. 그림을 정석으로 배우지 않아서 호랑이를 '못'그린 것이라고 하기엔, 호랑이의 모습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의 실력이 빼어나다.

 

 

 

 

 

때로는 까치가 호랑이를 혼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겁을 먹은 호랑이는 까치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조선시대인 것을 감안했을 때 꼬리를 내리는 양반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백성이 양반을 혼내는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이 역전된 관계로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민화를 두고 '백성들의 염원을 담은 그림'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해서 백성, 서민들이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먹고 살아갈 걱정을 지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뒷받침된 백성들은 문화에 눈을 돌렸다. 의식주의 걱정이 해결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부당한 권력관계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들처럼 떵떵거리며 허리를 펴고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신분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까치가 된 자신으로 염원과 소망을 민화에 담았다.

 

 

 

 

 

 

 

 

 

 

 

 

 

 

 

 

 

 

 

작자미상, <책가도> 10폭 병풍 중 일부 @국립민속박물관

 

 

 

 

 

 

 

 

 

 

 

 

 

그래서 백성들에게 양반이란, 무서우면서도 해학스럽게 표현하고 싶은 존재였다. 동시에 쉽게 될 수 없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책가도>란 이런 마음이 내포된 그림이다. 책을 주제로 방 안에서 쓰는 물건을 그렸는데, 이 역시 <까치 호랑이>와 같은 우리의 민화이다. 

 

 

 

 

 

<책가도>에는 책, 벼루, 먹, 화병, 과일 등이 그려졌으며 책과 학문을 각별하게 여기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양반에 대한 백성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 당시 민화는 양반이 아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서민들이 그리거나 샀다. 그들이 왜 <책가도>를 샀을까. 돈은 경제적으로 일해서 채울 수 있었지만 학문과 책은 양반들만큼 쉽게 쌓기 어려웠다. 그런 그들이 <책가도>를 자신들의 공간에 배치했다. 아마 그 이유들 중 하나는 양반의 서재 혹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니었을지 짐작해본다.

 

 

 

 

 

민화는 당시 양반들에 의해  '저속한 그림'이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서민들의 이런 염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대부들은 '문인화'를 통해 민화의 격을 낮게 바라봤다. 아무리 민화가 유행한들, 학문과 지식을 겸비해서 잡는 붓과 농기구를 만지고 잡는 붓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민화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이러한 차별 속에서 백성들의 애환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화 속에는 애환과 해학, 그리고 솔직함이 담겨있다. 그들의 부러운 마음까지 담길 정도로.

 

 

 

 

 

 

 

 

 

 

 

 

 

 

 

 

작자미상 <화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물론 양반에 대한 그림 외에도 <화조도>와 같은 그림이 있다. <화조도>는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인데 당시 신혼부부의 방에 걸어두기도 한 그림이다. 꽃과 새는 조상들이 즐겼던 미의 대상으로, 암수 한 쌍의 새처럼 사이 좋게 잘 살라는 의미를 담았다. 비슷한 의미로 <초충도>도 있다. <초충도>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풀과 벌레로 표현한 작품이다. <초충도>를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을 표현했고, 동시에 꽃은 여자로 나비는 남자로 생각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뜻한 작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출세를 기원하며 잉어나 물고기와 같은 물속 생명을 그린 <어해도>가르침을 주기 위해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 등 민화의 소재와 종류는 다양하다. 

 

 

 

 

 

 

이렇듯 민화는 장수와 화목을 소망하며 일상생활 공간에 장식을 하는 역할도 했다. 오늘날 석류나 사과 등 각종 과일과 다양한 꽃의 그림에 의미를 부여해서 집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쉽다. 그렇게 그 시절에도 민화는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서 함께했다. 그 염원은 복이 들어오고, 장수를 하고, 충과 효를 지키고, 부부가 연을 지키며 함께 사는 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민간신앙이 담긴 민화가 대중성과 실용성을 함께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작자미상 <연화도> @한국데이터진흥원

 

 

 

 

 

 

 

 

 

 

 

 

 

 

이렇듯 민화는 장소와 용도에 따라 그림의 소재와 주제가 달라졌다. 공통적으로 색감은 주로 강렬하고 선명했는데, 이는 민화의 색채와 화법의 특징으로도 볼 린다. 민화가 단순하게 장식품이 아닌 염원을 담은 주술의 역할을 했기에 강했던 색감이 이해가 된다. 자연의 재료를 직접 갈아서 사용했기에, 전통적으로 오방색을 띠는 작품들도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대부들에 의해 무시를 받던 민화는 왕실까지 전파되었다. 병풍과 같이 왕실의 곳곳에서 민화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지배층이 백성들의 그림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문인화와 민화의 위치가 아예 바뀌었다.

민화를 한국 전통의 그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그 시절 담으려고 했던 풍자와 해학을 담은 파격적인 그림들은 여러 미술책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에 문화센터와 학원 등에서 민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공예품의 디자인으로도 민화가 등장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코로나 19의 답답한 시기, 이러한 시기에서도 견디는 힘은 민화를 그리며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닮아서가 아닐까. 민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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